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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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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토니우스의 죽음과 내전의 종식 ==== 안토니우스와 남은 군사들은 근처에 기다리고 있던 클레오파트라 7세의 함대가 막판에 노력한 끝에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옥타비아누스는 그들을 추격하였고 BC 30년 8월 1일 알렉산드리아에서 옥타비아누스가 다시 한 번 승리를 거두자 패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7세는 자살하였는데 독사가 클레오파트라 7세를 무는 사이 안토니우스는 자신의 칼로 몸을 찌르고 클레오파트라 7세의 팔 쪽으로 쓰러졌다. 옥타비아누스는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한 후 알렉산드리아에 보존되어 있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유해를 참배했는데 그때 만진 코가 일부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그러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다른 왕들의 유해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으며 "나는 시체가 아니라 왕을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편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의 후계자로서의 위치를 잘 이용하여 크게 성공했었기에 다른 사람들이 이를 활용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두 명의 카이사르가 있으나 하나로 족하다.”라는 말을 남겼으며 훗날의 정치 인생을 위해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7세의 아이들은 살려주는 대신에 카이사리온을 죽이도록 명령하였다. 이렇게 하여 독립국가로서의 고대 이집트의 역사가 막을 내렸고 이제 이집트는 로마의 속주로 전락하게 되었다. 특히 옥타비아누스는 클레오파트라 7세의 막대한 보물을 압수하여 병사들에게 나누어주면서 그들의 변함없는 충성을 얻어냈고 이후 풍요로운 이집트를 자신의 개인 소유로 삼으면서 막대한 경제적 기반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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